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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AT' 조코비치가 페더러·나달보다 인기 없는 이유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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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영국 런던의 올잉글랜드 클럽에서 열린 윔블던 테니스대회 남자 단식 16강전에서 노바크 조코비치(2위·세르비아)는 홀게르 루네(15위·노르웨이)에게 3-0(6-3 6-4 6-2) 완승을 거뒀다. 하지만 경기 후 조코비치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는 센터 코트의 관중들이 선을 넘는 비아냥을 자신에게 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경기 직후 코트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조코비치는 “존중을 보여준 모든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선수인 저를 무시하기로 선택한 모든 분들은 좋은 밤 보내세요”라고 말했다. 이 때 조코비치는 “have a goooooooood night”이라고 ‘굿’을 길게 발음함으로써 “부(boo, 야유 소리)”처럼 들리게 만들었다. 경기 중 루네(Rune)를 응원하는 관중들이 “Ruuuuuuuuune”를 외칠 때, 이 소리가 “부(boo)”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던 사회자는 “관중들이 루네를 외쳤을 뿐이지 당신(조코비치)에게 무례하지 않았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사태를 수습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정색을 한 조코비치는 단호하게 “관중들이 루네를 응원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야유를 보내기 위한 핑계일 뿐입니다. 저는 투어를 20년 넘게 해왔기에, 모든 속임수를 알고 있습니다. (중략) 저는 훨씬 더 적대적인 환경에서 경기를 한 적도 있어요. 저를 믿으세요. 여러분은 저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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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코비치, 라파엘 나달과 로저 페더러(왼쪽부터)는 테니스계의 ‘빅 3’로 불린다. 2024년 7월 현재 조코비치는 24개의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획득해, 나달(22회), 페더러(20회, 2022년 은퇴)에 앞서 있다. 조코비치, 나달, 페더러 인스타그램
빅 3가 남자 테니스 단식 세계랭킹 1위를 차지한 기간을 모두 합치면 무려 947주(18년에 해당)에 이른다. 이중 조코비치는 428주에 걸쳐 1위에 올랐고, 페더러(310주)와 나달(209주)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특히 조코비치는 독보적인 성적을 거둠으로써 테니스계의 고트(GOAT, Greatest Of All Time,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위에서 언급한 최근의 사건이 보여주듯이 조코비치는 실력만큼 팬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왜 그는 페더러나 나달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할까?

첫 번째 이유는 조코비치가 페더러나 나달 같은 스포츠맨십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테니스 선수들은 경기가 안 풀릴 때 종종 자신의 라켓을 부셔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곤 한다. 이에 선수의 스포츠맨십은 라켓을 부순 횟수에 따라 판가름 날 때도 있다.

조코비치는 무려 62개의 라켓을 부셨다. 코트의 악동이라고 불렸던 존 맥켄로가 총 78개의 라켓을 부순 것을 감안하면, 조코비치도 맥켄로에 못지않은 다혈질인 것을 알 수 있다.

나달은 놀랍게도 프로 커리어를 포함해 일생 동안 단 하나의 라켓도 부순 적이 없다고 한다. 이에 대한 이유로 나달은 “라켓을 갖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저는 결코 라켓을 부수지 않습니다. 경기를 지는 것은 저의 잘못이지, 라켓의 잘못은 아닙니다”라고 밝혔다.

유소년 시절 악동의 이미지에서 중후한 신사로 변모한 페더러는 커리어 통산 11개의 라켓을 부셨다. 하지만 페더러는 코트 밖에서 놀랍도록 매력적인 모습으로 이를 만회하곤 했다. 게다가 페더러는 상대 선수를 비방하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자신을 이긴 상대를 칭찬함으로써 스포츠맨십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프로테니스협회(ATP)는 매년 최고의 스포츠맨십을 보여준 선수에게 ‘스테판 에드베리 스포츠맨십 상’을 수여하다. 수상자는 선수들의 투표에 의해 결정된다. 페데러는 이 상을 무려 13번, 나달은 5번 수상했지만, 조코비치는 한 번도 이 상을 받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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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신시내티 ATP 마스터스 1000 남자 단식 결승에서 조코비치가 카를로스 알카라스에게 2-1 역전승을 거둔 뒤 상의를 찢으며 포효하는 장면. 조코비치는 기쁘거나 좌절했을 때 셔츠를 종종 찢는데, 이런 행동에 대한 팬들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린다. 조코비치 인스타그램
테니스 팬들은 전통적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선수를 사랑한다. 페더러는 우아하면서도 공격적인 스타일을 가졌다. 잔디 코트에서 특히 강했던 페더러는 한 손으로 하는 아름다운 백핸드와 치명적인 네트 플레이 등을 통해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나달은 페더러와 상반되는 스타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화려한 스타일보다는, 나달은 원초적인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치열하게 싸우는 전사였다. 나달이 절대적인 우세를 보였던 클레이 코트에서 공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려지기 때문에, 랠리가 길게 이어질 때가 많다. 이에 나달은 이른 승부를 노리는 대신, 빠른 발과 엄청난 체력을 바탕으로 끈질기게 공을 받아넘기는 투사였다.

조코비치는 하드코트에서 가장 강했지만, 잔디 코트와 클레이 코트에서 페더러와 나달을 각각 이길 정도로 코트의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기보다는 만능선수에 가까웠다. 철저한 기본적인 플레이를 바탕으로 머신같이 테니스를 치는 조코비치는 페더러가 갖고 있는 세련된 매력과 화려함이 없었다. 순수한 소년 같은 매력을 가진 나달만큼 열정적이지도 않았다. 팬들이 조코비치를 싫어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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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라이벌전 중 하나였던 페더러와 나달의 대결은 테니스의 전반적인 인기 상승에도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위대한 라이벌 전에 끼어든 조코비치는 많은 테니스 팬들에게 ‘the third wheel(불청객)’ 취급을 받았다. 페더러와 나달의 패권에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조코비치를 싫어하는 팬들도 있었다. 사진은 2022 레이버 컵에 유럽팀의 일원으로 출전한 나달(왼쪽)과 페더러의 모습. 페더러 인스타그램 isp20240717000082.800x.0.jpg
조코비치는 2023 프랑스 오픈 출전 중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심장”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TV 중계 카메라에 적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코소보는 2008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했으나, 세르비아는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코비치는 유고 내전 당시 각종 전쟁범죄를 일으킨 세르비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특히 서유럽에서 인기가 없다. NBC 뉴스 캡처

오는 26일 개막하는 파리올림픽에 조코비치와 나달은 나란히 출격한다. 2024 윔블던 챔피언 알카라스와 한 조로 나서는 나달의 복식 금메달이 유력한 상황에서, 조코비치는 마지막 남은 과제인 올림픽 단식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파리올림픽에서 두 전설의 마지막 대결이 성사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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